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벨프 가문 (문단 편집) == 전성기 == 벨프 가문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2세기 [[하인리히 사자공]] 시절이었다. 사자공은 상속과 정복, 정치력을 두루 발휘하며 [[바이에른]] 공국과 [[작센]] 공국, 그리고 [[슈바벤]]의 일부 지역을 획득하여 [[신성 로마 제국]]에서 최대의 영토를 지배하는 제후가 되었다. 그의 영지는 황제 [[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]]의 영지보다 훨씬 넓었다. 사자공은 바르바로사 황제와 지속적인 다툼을 벌였지만 결국 황제에게 패배하고 말았다. 1180년 바르바로사 황제는 사자공에게 법익(法益) 피탈자(법의 보호를 박탈당한 사람, [[Outlaw|outlaw]]) 처벌을 내려 그의 모든 작위를 박탈하고 영지를 몰수하여 자신의 측근들에게 재분배하면서 벨프 가문에게 거의 멸문 수준의 징벌을 내렸다. 이로써 벨프 가문은 사자공의 모친이 보유한 [[브라운슈바이크]] 일대의 사유지만을 보유하며, 역사 속에서 그대로 사라질 뻔 했다. 그러나 제국 내에서는 벨프 가문에 우호적인 세력과 [[호엔슈타우펜 가문]]에 적대적인 세력이 많았다. 때문에 벨프 가문은 비교적 빠르게 재기하게 되었다. 바르바로사 황제가 익사로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인 [[하인리히 6세]]는 강력한 정적인 사자공에게 다소 유화적인 조치를 취하여 1194년 사자공에게 내려진 추방령을 해제하고 [[브라운슈바이크]] 일대의 작은 공국을 다스리게 했다. 사자공은 고향으로 돌아와 건축과 예술을 지원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1년 후인 1195년 사망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